9월 5일
005. 늦여름
아침 공기가 더 이상 반바지를 입을 수 없을 만큼 쌀쌀해졌다. 늦잠을 잔 탓에 손에 잡히는 반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섰던 지난 월요일엔 하루 종일 한기가 들어 이대로 감기가 걸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언젠가 "여름휴가를 떠났던 파리지앵들이 파리로 돌아오면 그 해 여름은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절기를 나누는 건 공전이지, 어떻게 사람을 보고 계절을 판단하느냐 되물은 적이 있는데, 요즘 확실히 사람이 붐비기 시작한 파리의 지하철을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파리지앵들이 돌아왔다.
정화와 나는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여름의 끝물을 즐긴다. 각자 뭐가 그리 바쁜지 밤이면 밤, 아침이면 아침마다 서로의 수면을 방해하고 미안해하며, 점심 식사만은 틈틈이 밖에 나가 햇볕 아래서 하고야 마는 것이다. 밥을 먹다 땅벌과 비둘기에 쫓겨 자리를 옮기기도 부지기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추억이 되겠지 하며 매 순간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낼지 궁리 중이다.
006. 길을 걷다가
돌연 책이 빼곡히 들어찬 창문이 눈에 들었다. 채린과 나는 전일 관람했던 건축에 대한 전시의 여파로 길 위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오스만 건축물이 늘어진 골목에 접어들며 오스만은 이제 사람이 살기엔 너무 낡지 않았나, 하며 도시를 헐뜯기 시작하려는 시점에 클리셰에 완벽히 부합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만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춘 우리는 우두커니 바라보며 좋다, 멋있다, 저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말을 아무런 정제도 거치지 않고 뱉었다.
분명 쥐가 들끓고 시설은 낙후된 수도엔 석회가 쌓여 넘칠 것이라 욕하던 낡아빠진 오스만도 우리가 그렇게 갈증하던 활자들로 가득한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낭만적으로 보이더라. 나는 그 순간 각자의 머릿속에 책더미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007. 흐라발
이북 하니 떠오른 이야기다. 올해 들어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의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흐라발은 저저번 달 비엔나에서 폴란드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부다페스트에서 찾아간 맥주집 이름이었는데, 뜻도 모르고 찾아간 가게 전체에 흐라발이라는 캘리그래피와 함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에 검색해 본 결과 상대적으로 몇 없는 소개글이 떠올랐다. 회의주의적 성격을 띤 체코의 문학가이며 그가 집필한 다수의 서적들 중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단 한 작품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했다. 한동안 정화와의 토론 주제가 사람에 대한 회의와 권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가히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역설적인 단어들로 구성된 제목에 이끌린 나는 이튿날 폴란드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서 잠과 깸을 반복하며 130쪽 분량의 짧은 소설을 완독했고, 파리에 돌아와선 두어 번을 더 읽었다.
고독한 노인의 방백과 같았던 글은 극의 시대적 배경인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시에 발생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끝을 향한다.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은 그와 어울리는 결말을 맞이하고, 전쟁과 학살의 역사로 가득한 도시를 향하는 버스엔 여명이 들었다. 책의 제목처럼 상반된 풍경이었다. 다신 없을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