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3일. 2020년 결산일상 2021. 1. 4. 17:30
연말을 보낸다는 것.
너 누구야 오랜만에 타자를 친다. 학기를 끝내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생일도 성탄절도, 그리고 어느새 멀찍이 도망간 2020년이 내게 인사를 한다. 2020, 전 지구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2020년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다니, 무슨 일이 있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새삼스럽다. 정말이지 모두가 다사다난하게 보낸 일 년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네 인생은 한번도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없지 않느냐, 하고 물으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올해 역시 나의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삶에 큰 획을 그었기에 올 해에 대한 결산을 차근히 내려보고자 한다.
I. 올해의 목표
우선 올해가 소띠의 해라고 한다. 나도 소띠이고 내가 13살 일리는 없으니 나의 이십 대도 어느새 반 틈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프랑스에 있을 땐 대학에 못가면 인생이 끝나진 않아도 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닌가, 했는데 지금은 그냥 괜찮다. 시야가 좁아지면 생각도 좁아진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최대한 다양한 길을 둘러보며 여러모로 궁리 중이다.
01. 독서
참 지루하고 진부한 목표다. 올 해는 아무래도 독서량이 너무 줄여서 다시 늘려볼까 한다. 부수적인 목표는 내가 잘 읽지 않는 역사와 세계사/인문학 위주로 독서의 영역을 넓히는 것.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교양을 쌓아보고자 한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신문도 많이 읽을 것.
얼마 전 치룬 경제 시험에서 경제 사고력은 만점 경제 지식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는 기묘한 점수를 받았다. 나름 고득점으로 합격은 했다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욕심이 든다. 지금 내 뇌는 독서가 간절하다.
02.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고민할 것.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보통의 삶”의 범주에 드는 것이라 했다. “보통”이란 단어에 개개인의 삶을 담아내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모두가 지향하는 삶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모두와 나의 지향점엔 무슨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을까. 내가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에 대해서도 말이다. 오직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03. 취미에 대해
방구는 아나나가 궁금해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일정에 맞춰서 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굳이 목표까지 넣진 않으려 한다. 돌아보면 다 되어있겠지, 하는 중이다. 계획상 나는 앞으로도 몇 년을 더 책상 앞에 붙어있어야 하기에, 올해 나의 목표는 내가 그것을 끝마칠 때까지 나의 원동력이 되어줄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딱히 관심가는 분야가 없다.
04. 사람
주변을 잘 챙길 것. 당연한 이야기다.
II. 2020년 정리
01. 최고의 음악
막상 적고 보니 떠오르는 곡이 없어서 애플 뮤직을 들여봤다.
대충 이렇다는데... 작년..봄 즈음 부터 닳도록 들은 황소윤, 결국 모두 사라질거라는 가사가 좋아서 정말 많이 들었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실제로 검색해보니 정말 내 또래의 가수였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내내 음악만 들으며 콩피느멍의 우울한 새벽을 견디고 xxx의 유해한 가사를 가졌지만 신나는 리듬을 가진 음악을 들으며 아침 조깅을 나가던 그런 상반기가 떠오른다. 정말 애증의 상반기 아닌가.
02. 최고의 영화
얼마 전 디즈니의 코코를 감상했다. 결국 사라질 인생의 이면이 저렇게 화려한 저승이라면 나는 이생도 내생도 아쉬울 것 없이 살아가리라 하는 생각. 그리고 두번째 영화는 1995년 발매된 하인리히 하러의 책을 영화화한 티베트에서의 7년(1997)이다. 나에겐 종교가 없지만 굳이 내 사상에 가까운 종교를 골라보자면 불교가 되겠구나 하는 결론을 이끌어낸 영상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프랑스로 망명을 나온 티베탄과 꽤나 가깝게 지냈고, 그들 중 한명이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자세히 들려주었기에 이 영화에 더욱이 애착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생을 표현한 코코와 죽음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라보는 티베트에서의 7년은 엄연히 뜻하는 바가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종교를 가질 일이 없겠지만 이 두 영화를 통해 종교와 민간신앙의 멋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 마지막으로, 세번째 영화는 역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몇 년이고 몇십 번이고 돌려보는 아주 소중한 영화. 한 남자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이루어 내는 과정을 유럽의 장엄한 자연과 미국의 대도시를 넘나들며 표현했다. 그는 모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가 원래 누리던 삶이 상상 속의 그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03. 기억나는 순간.
같은 방향으로 햇볕이 기울었다. 파리에서도 서울에서도 내가 창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 도시 모두 북반구에 있는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다른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04. 맛있었던 것
케주와 연배와 먹었던 베이글 샌드위치. 엄청나게 맛있고 특이한 음식은 아니지만 가끔 그 맛이 떠오른다. 하루가 기억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개월이고 아빠의 연락을 피하던 나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 그의 전화를 받았다. 많이 혼났고 울었다. 언니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흐꼬멍데를 대신 부쳐주는 연배 웃기고 고마웠던 언니들.
05.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우울할 때 동굴에 들어가는 바보 같은 짓 정도면 되려나. 요즘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나 우울해요 하며 사방팔방 난리를 친다. 이야기를 하면 알아주고 대화를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06. 하지 말아야 할 것.
웹서핑을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지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핸드폰을 한 일 년이다.그리고 육식이다. 부모님이 채식을 시작하신 덕에 나도 고기를 먹는 날이 많이 줄었다. 비건이 될 생각은 없지만 육식을 하는 날을 최소로 줄일 것. 당장 실천하는 중이기도 한 목표이다.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해는 이렇게 살았다. 올해도 이렇게 살아가겠지. 당장이라도 창대한 일을 이뤄야 할 것 같았던 새해가 이렇게 빨리 다가왔다. 주변에 새해인사를 돌리며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올해엔 꼭 만나요. 모두 곧 볼 수 있길. 하루빨리 이 팬데믹이 지나가길 바란다. 보고 싶은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