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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 dec, 2023
    일상 2023. 12. 31. 02:16

     
    여행기


     
    왜 ios키보드는 한/영을 바꿀 때 caps rock을 눌러야 할까, 오래간만에 타자를 치려니 어색하다. 12월의 끝자락, 3학기를 마친 지 일주일이 되었고  나는 어느 겨울처럼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행선지는 독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재미없다는 이유로 유명한 도시 베를린. 그곳에 내가 있었다. 

     
     베를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냐, 나는 다가오는 연말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생일과 성탄절, 새해를 함께 겪어야 하는 사실은 나를 외롭게 하게 된 지 오래다.) 이번 학기의 수학수업은 정말이지 학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지루한 수업이었고, 그날은 나디아도 수업엘 오지 않아서 나는 늘 그렇듯 손바닥만 한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기도 분위기도 답답하기만 했던 학기의 가운데서 나는 
     
     어디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글 지도를 켜 근방의 도시를 샅샅히 훑었다. 근교 도시 목록은 외우게 된 지 오래다. 나는 스카이스캐너를 켜서 가장 저렴하고 날짜도 잘 맞는, 그러니까 가장 ’ 합리적인 ‘ 도시를 찾아 헤매었고, 로마, 베니스, 바르셀로나는 이미 가봤고… 베를린. 그땐 몰랐지. 베를린행 티켓이 가장 저렴한 이유가 있을 줄은. 
     
    몽펠리에 공항은 작고 취항도시가 적어서 적어도 마르세유 공항 정도는 나가야 한다. 그 사이의 거리도 두 시간은 되므로 트람이나 시내버스처럼 접근성이 좋은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차 버스, 카풀 등 모든 교통수단을 검색한 본 끝에 예매한 플릭스버스를 타고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땐 비행기 출발 5시간 전이었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계획도 짜고 사람구경도 하고 그러면 다섯 시간은 충분히 죽일만하다. 새벽에 먹은 달걀 두 개. 공항에서 먹은 빵하나, 손바닥보다 조금 큰 감자칩만으로 밤 아홉 시까지 버티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원래는 저녁 다섯 시엔 시내에 들어와 동행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 계획이었다. 학기 중엔 자주 들여다 보지 않는 카카오톡엔 우리 무얼 먹을까요 어디에 갈까요. 나는 공항에 메여있지만 인터넷 세상은 여전히 내게 조잘조잘, 베를린이 어디가 좋고 어디가 그렇게 맛있고를 떠들어댄다. 필요한 정보를 걸러낼 여력이 없었던 나는 닥치는 대로 받아 적으며 때때론 기내방송을 듣고 또 음악을 켜고 아기가 우는 소리에 짜증을 느끼고.
     
    피곤했다. 기내 방송은 두 시간 연착이라고 했으나 도착시간이 세 시간 반이나 늦어진 걸 보면 착륙도 늦었거나 연착시간을 늘리지 않으려고 기체에 승객을 태우고 공항을 활보했다거나 둘 중 하나이겠다. …둘 다 일 수도 있고. 나는 그 안에서 걷고, 앉고, 먹고, 생각하고, 시험의 여로가 풀리지 않았기에 여행을 가는 것 후회하기도 하고, 평생 하지 않는 크로키도 하다 보니 도착을 하긴 하더라. 공항에서 빠져나와 목적지를 찾는 길은 추웠고 나는 터미널에서 마주친 체코인과 이야기를 하며 길을 찾았기에 헤매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베를린에 입성했을 땐 저녁 아홉시였다. 시내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주변은 이미 어두웠다. 그리고  앞으로 3일은 휴가를 가질 가게들 또한 거진 전부 문을 닫았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10년은 족히 된 캐리어를 퉁기며 걷다가 나는 겨우 마감 직전의 쌀국숫집을 찾아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그릇을 비우고 계산을 했던 것 같다. 맛은 뭐.. 시장이 반찬이었지 뭐. 
     





    독일 여행은 뭐랄까, 4박 5일의 여정 중에 첫 3일 동안 해가 뜨지 않았다. 해가 많은 도시에서 넘어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겪는 어두운 아침과 알싸한 추위에 차오르는 우울감과 싸워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들도 도통 유쾌한 편은 아니었고 기대하며 찾아간 미술관의 전시는 엉망이었고, 비가 오는 건 알았지만 개중에도 사나운 비였고 너무 바람도 너무 불었다. 크리스마스의 베를린은 아름답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즐겁지만 괴로웠던 이틀 차와 사흘 차가 지나고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라면 나의 이번 여행은 최악이 되겠구나, 이대로 흘려보내기엔 아직 이곳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었다. 여행을 어떻게 하면 재정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빗속을 걸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 앞의 한국인 무리가 유럽의 길은 너무 복잡하다며 떠들어댔다. 음악을 켰다. 내가 즐겨들은 음악들은 인간과 로봇을 노래하고 나는 한참 인공지능에 빠져있었다. 테마를 잡아서 다녀야지. 영화 박물관을 가고 유명한 건축물을 보러 다녀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베를린 중심의 텔레비전 타워의 사진만 하루에도 수 십 장은 찍어대고 있었으니 나는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보단 내가 원하는 대로 도시를 즐겨야겠다, 하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크게 관심이 있진 않다.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예민하게 음식의 풍미를 즐기는 쪽은 사실 나의 언니고 언니와 떨어져 산지 수년이 되어가니 맛을 즐긴다는 특징은 나에게서 꽤나 멀어졌다. 그러니 미식가라는 단어는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더욱이 채식 위주로 생활한 지가 3개월을 채워가던 중 이기에 육류 위주 독일 음식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음식에 미련을 놓으니 예산이 넉넉해지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생긴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지겹도록 본 고전화와 신낭만주의 작품을 보는 대신 전체주의와 통일의 흔적이 남은 길거리를 구경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꼭 독일 음식이 아니어도 먹고 싶은 걸 먹는 거지. 이 여행의 분기점이다. 두꺼운 소시지를 숭덩숭덩 썰어 감자튀김과 곁들여 먹는 음식 대신 먹은 따뜻한 두유라테와 시나몬 설탕이 잔뜩 발린 도넛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흘 째 아침, 지난 사흘을 고생한 나를 위한 마냥 비가 그쳐있었다. 젖은 바닥으로 내리쬐는 은색 햇볕의 환희, 투명하게 개인 대기 사이로 반짝이는 텔레비전 타워는 환상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내 입에서 퍼지는 하얀 김을 보았고 손 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을 느꼈다. 거대한 피조물 앞에 선 인간의 움직임이다. 나는 거대한 존재의 압도감을 즐기는 편이라 나는 이 순간 남들보다 조금 더 행복했으리라 생각한다. 물기가 울렁이는 표면에 무지개가 비치면 나는 그걸 행운이라 여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날씨가 맑아 좋다했겠지.


     
    ‘…’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시 도시가 주는 역동적인 힘이 좋고, 난생 처음 떨어져 본 타지의 에너지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원하던 바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갈피를 잡았고

    남은 시간의 나는 그곳에서 오롯이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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