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길었다. 시험은 세 개 뿐이었는데 그냥 길었다. 우리과는 정말이지 특이한게 학사일정을 본인들이 마구 결정해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우리는 타과에 비해 5일 정도 늦게 종강했고, 학사일정에 따르면 2주의 크리스마스 방학, 그리고 2주의 기말고사 기간을 가져야했는데, 우리는 기말고사 기간의 1주 차에 몇몇의 2학기 수업을 개강했고 2주차에 남은 1학기 과목의 기말고사를 치뤘는데, 기말고사를 코 앞에 두고 듣는 수업은 정말 상상 이상의 압박을 준다. 아니 상상도 못했고 겪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한 일정이다.
“괴로워”
“힘들어”
“배고파”
베를린에서 초콜렛 사왔는데 우리 이거 한 조각씩 먹자. 불평을 해서 뭘하겠는가, 견디는게 능사다.
무제3
온갖 첨언으로 존재를 포장하는 것은 쉽다. 깨끗한 옷과 바른 자세로 나를 포장하는 것도 쉽다. 인터넷에 멋지고 예쁜 사진만을 올려서 이상적인 두 번째 자아를 꾸며내는 것은 조금 노력이 들겠지만 우리 인류는 그것을 해내고 있다. 이 쯤 되니 드는 생각은 뭐냐, 나는 대체 언제 솔직한거지? 대체 어느 누가 날 것의 나를 알아주는 걸까? 하는 의미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솔직함은 내가 바라는 나의 성격이다. 나는 사람의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는 편 이지만 남의 험담도 한다. 제 3의 언어로 생활하고 있기에 언어습관이 한국어에 비해 유순하다. 미움받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해외생활이 5 년을 채워가며 이젠 극단의 취향도 없어졌다.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평생이고 좋아할 줄 알았던 영화를 더이상 즐기지 않으니까. 이젠 나도 내가 어떤 애다, 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최근엔 친구에게 이상한 걸 묻기도 했다. 나 사진보다 실제로 보면 더 못났어? 얼굴 말고 사람…그러니까…”나“ 말이야. 하는 질문. 그때 걔는 뭐라고 했더라.
“너? 그냥 너지”
“그니까 어떠냐고”
“멋져”
그 날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 의문을 안고 산지 며칠 째, 나는 잡생각을 떨쳐낼 수 있는 강력한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3학기의 성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