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바나나도 하나 있지만, 물론 헤드셋도 있지만.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납작한 백팩이나 에코백을 메고 있더군. 근데 있잖아, 엄마 우리 과 애들은 가방을 두 개도 들고 다녀. 지난 학기에 나도 그렇고, 학교에 아침 여덟 시에 갔다가 저녁에 끝나니까. 특히 운동 가는 날에 시간을 아끼려면 말이야... 엄마 아빠는 뭐 하고 있었어?
횡설수설
지난 이 년을 과 애들의 관찰 아래 살아왔다. 동시에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둔하지 않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나디아가 그 시선을 같이 느끼고 공감을 해주었기에 그것을 위안 삼아 지낼 수 있었다. 아주 최근 어떤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끼던 상황이 정말 정신 나간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를테면 주말에 외출할 때 마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불안해지고, 가게의 점원들과 가볍게 나누는 인사마저 부담스럽게 느꼈을 때. 코미디 광장의 군중이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이 느껴졌을 때, 나는 정말 내 머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한국인도 내게 그랬다. 겨울 방학동안 다른 도시에 가 있었는데,
"메트로 밖으로 딱 나섰는데 숨이 가쁜거야“
"맞아 숨이 턱 막히는 느낌”
누군들 인파가 몰리는 곳에 가면 답답한 느낌이 들겠지만, 우린 같은 것을 느꼈기에 그걸 콕 집어서 언급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내겐 큰 위로였다. 동양인이 없는 학과에서 2년 반을 지내고 나는 드디어 누군가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오 세상에, 끔찍하고 달가운 카타르시스다.
각설하고, 나는 이번 두 여행이 참 좋았다. '어느 곳'에서 '꼭'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나는 자유로웠다. 첫 1학년 때는 파리에, 두 번째 1학년 때는 류블랴나에, 친구들이 사는 도시를 방문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왔던 지난 2년과 다른 연말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관찰과 평가에 둘러싸여 켜켜히 쌓인 독을 해감하고 돌아온 내게 쏟아진 합의되지 않은 관심은 폭력적이었다. 이번 학기의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4학기의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나를 관찰하던 눈알들 처음부터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그들에 보일 모습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니 말을 섞기 싫은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굳이 피하지 않게 되었으며, 나의 부족한 불어실력을 내보였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도 냈다. 내가 말하기 싫은 날은 안 하고, 나는 툭하면 작은 거짓말로 나를 치장하려 하기에 솔직함을 잊지 않으려 애썼고 눈이 마주치면 인사했다. 2년 반을 각양각색의 눈알들에게 괴롭혀진 나에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에도 어찌나 용기가 필요하던지.
”루카가 누구라고?”
“키 큰 애”
“키는 나도 큰데”
“니 말고 키 큰 애”
“쟤”
"쟤는 로넌이고… 게다가 로넌과 루카는 닮지도 않았어 “
"내 눈엔 똑같이 생겼어”
걔네를 헷갈리는건 너 밖에 없을거야. 가끔 밥을 같이 먹는 안토니는 이런 나를 괴짜로 보는 듯 하다. 지는 한국계 이름과 일본계 이름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하여튼,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애들과 마치 퀴즈를 하듯 공부했다. 동기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기 시작하자 오롯이 둘이었던 나와 나디아에게 주변이 생겼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나디아는 상냥하고 똑똑한 예쁜 프랑스 여자애라, 내가 그 애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방해한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몇 번 있어서, 그 애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에 더 기쁘기도 하다. 그 애가 더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 있고 내가 더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 있고, 그리고 어느 날은 나디아가 내게 말하길
"사람들이 널 좋아할 걸 알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시선은 관심이고 우리는 그걸 많이 느꼈다. 항상 긍정적이려 노력하는 나는 일방적인 무례한 관심의 일부를 친구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도 느껴지는 눈알은 있지만 그 애들도 차차 내게 인격으로써 다가오겠지.
"난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너는 어때?"
"정확해"
시선을 피해 멀리 떨어진 학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우리. 우리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 그렇지.
보라색 색연필은 부러져도 보라색이고 갈색 색연필은 부러져도 갈색인데.
참 이상하지. 2021년의 나도, 2022년의 나도 똑같은 나인데, 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야.
무제
어떤 애가 말했다.
"네가 그때 너 열아홉 살이라고 구라 깠잖아"
"나 올해 스무 살 맞는데?"
"너 몇 년도에 태어났는데?"
나는 생일 전의 04년생이 19살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적 속의 이런 공격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나는 눈알을 도로록 굴렸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최근에 관계를 회복한) 친구가 속삭이길 2004년 생이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