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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31일
    일상 2021. 9. 1. 01:15


    080. 여름자락

    덥다. 정말이지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다.

    “올 해는 장마가 두 번 이래”

    “정말 너무하지 않니?”

    아빠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때 나는 아직 알바를 하고 있었고 마악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것 같다. 올해는 에어컨이 두 번이나 망가졌고 공교롭게도 모두 장마와 겹쳤기에 우리 가족은 더욱 꿉꿉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매장은 시원해. 다행이지”

    “아빠도 오늘 현장은 에어컨 있었는데”

    다행이구만. 아빠와 나는 소설에 나오는 이상적인 부녀에서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다. 대화가 어색했던 건 지난 몇 달간 있었던 대립 상태를 끝내기 위함이었겠지, 나는 그날 빵을 포장하고 커피를 내리며 아빠를 생각했다. 엄마와 자식들이 최대의 관심사이며 그들을 먹이는 것이 취미인 우리 아빠. 그에 비해 남에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게 타고나다 못해 거부하는 나와 언니 그리고 오빠까지. 가족에 대한 생각은 밤을 새워도 끝이 나질 않는다. 나는 그날 자잘한 실수를 엄청나게 잦게 했다. 나를 데리러 온 언니와 퇴근을 할 땐 비가 잠시 그쳤고, 아빠의 말마따나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런 일이 있었어, 하며 걷는 짧은 그 길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겨우 반나절 떨어져 있었던 우리는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이야기보따리를 내놓으며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그런 밤이 있었다.





    081. 무제
    서울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참 많다. 좋아하는 실내공간은 많지 않으니 "곳"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가령 동대문 성곽공원이나, 서촌의 구석의 좁디좁은 골목, 혹은 창 밖의 운치를 즐기기에 충분한 카페라던지. 그런 곳들 말이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좋아서 강원도를 좋아했나, 서늘한 공기 때문에 노르망디를 좋아했나. 하여튼 나는 서울의 가을이 저절로 떠올랐다. 친구를 졸라 시내를 걸어봐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아직은 여름이라 그래, 그래도 많이 시원해졌는데, 설렁설렁 길을 걷다 밥집을 찾았다. 근데 있잖아. 내 생각엔 이래. 내 앞에 앉아 열심히 식사를 하던 친구가 말하길 이젠 그 공간뿐만 아니라 기억을 안고 있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지”

    적어도 내가 추억하는 선에서 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가. 파리에 넘어가 처음 맞이했던 가을도, 언니가 떠나고 다다와 헤메인 파리 시내의 가을도 작년의 그것만 못할 것이다.


    이르게 다가온 가을이 귀하다. 나는 그것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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